생명칼럼

[생명의 문화를 만들어 갑시다]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켜라"(마태 19,17

관리자 | 2009.02.12 10:56 | 조회 1578
 

"[생명의 문화]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켜라"

(마태 19,17) "


생명, 부부 사랑이 맺는 열매


▲ 박정우 신부(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사무국장)

 지난 12월 12일 교황청 신앙교리성은 인간배아 및 출산과 관련된 과학기술 개입 등 문제를 다룬 훈령 「인간의 존엄」을 발표했다. 이는 1987년에 나온 훈령 「생명의 선물」 이후 20여 년간 생식 기술의 발달로 새롭게 제기된 문제에 대한 윤리적, 신학적 지침을 다시 정리한 것이다.
 
 이 훈령은 인간생명의 탄생이 이뤄지는 참된 자리는 부부의 사랑을 바탕으로 한 혼인과 가정이며 출산은 혼인의 열매이어야 한다는 원칙을 다시 확인하면서, 이런 원칙을 해치는 체외수정, 고의적 배아파괴 등 어떠한 기술적인 조작도 비윤리적이기에 받아들일 수 없음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가톨릭교회의 생명윤리의 핵심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신법 혹은 자연법을 준수하라는 것이다. 그 법을 거스를 때 인간 생명의 존엄성은 무너지고 생명 파괴의 위험에 처하기 때문이다. 이미 1968년에 발표된 바오로 6세 교황의 회칙 「인간 생명」에서 인공 피임을 금한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바오로 6세 교황은 하느님께서 성을 만드신 근본 목적은 부부의 일치와 생명의 전달이기에 인공피임은 자연법에 어긋난다고 가르쳤지만 사회는 귀담아 듣지 않았다.
 
 결국 바오로 6세가 우려한 대로 생명의 전달이라는 성의 목적을 배제한 무분별한 성관계와 인공피임이 확산되면서 여성의 몸은 성적 도구로 전락하고, 피임약과 피임기구의 오남용으로 인한 피해, 성도덕의 문란, 그리고 피임 실패로 인한 낙태의 만연 등의 결과를 낳았다.
 
 교회가 혼전 성관계를 금하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만드시고 성적 능력을 주실 때 정하신 법은 성관계가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는 사랑을 바탕으로 이뤄지는 혼인 안에서 새 생명을 이 세상에 전달하고 키우는 책임감을 동반하는, 인격적이고 성숙한 행위여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사랑도 없고 생명에 대한 책임감도 없이 행해지는 미혼상태에서의 무분별한 성관계는 그 자체로 하느님 법을 어기는 것일 뿐 아니라 인간 성숙을 위한 온전한 자기 증여의 사랑을 방해한다. 더구나 그 결과로 원하지 않은 임신을 하게 되면 대부분 낙태라는 생명 파괴를 선택함으로써 또 다시 하느님 법을 위반할 뿐 아니라 낙태 후유증으로 인한 고통도 겪게 된다.
 
 마치 초식동물에게 육골분을 먹임으로써 광우병이 발생하고, 환경을 오염시킴으로써 아토피와 각종 암 등 새로운 질병들이 발생하듯이, 하느님의 창조질서를 파괴해 온 우리 인간은 인간 생명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법을 어길 때 예상하지 못한 불행한 결과를 감당해야만 한다.
 
 그 예로 제3회 생명의 신비상 수상자로 선정된 영국 상원의원 데이비드 알톤 경은 「생명운동의 투사」라는 책에서 낙태로 인한 육체적 심리적 결과를 들고 있다.
 
 그에 따르면 낙태 후 신드롬은 심리적 영향 뿐 아니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성 기능 이상, 자살충동, 알코올 및 약물 남용, 섭식 장애, 아동 학대"등의 결과로서 드러나고 있으며, 특히 인공유산을 경험한 여성은 유방암에 걸릴 가능성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첫 출산 나이가 늦어질수록 유방암에 걸릴 위험이 상승하며 모유 수유를 오래할수록 유방암 위험이 감소한다는 등의 의료적 연구 결과들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경우, 미네소타주와 텍사스주에서는 낙태시술을 하는 병원은 인공유산과 유방암 사이의 관련성을 잠재고객에게 경고해야 한다고 규정하며 정보를 제공한 상태에서 동의를 받도록 한 법령을 통과"시킬 정도로 인공유산으로 인한 유방암 증가의 위험성은 심각하게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하느님의 법과 자연 질서를 거스를 때 우리 생명은 위협받게 된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예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정하신 법, 특히 창조질서를 지킬 때 우리 생명이 온전히 피어나고 충만해지며 영원한 생명의 길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을 묻는 이에게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켜라"(마태 19.17)고 응답하신 것도 이런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예수님은 구체적인 방법으로 "살인해서는 안 된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마태 19,18)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이 계명들을 지킬 때, 즉 하느님께서 정한 법을 따를 때에만 충만한 삶을 누릴 수 있다.
 
 이런 계명들은 우리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인간의 성장과 기쁨을 위한 선물"(「생명의 복음」 52)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아있는 모든 것을 만드시고 그 생명체들이 온전히 충만한 상태로 살 수 있는 법칙을 마련하신 분은 창조주 하느님이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
 
[평화신문]  2009. 01. 18발행 [10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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