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칼럼

[생명의 문화] 생명을 위협하는 우리 시대의 우생학적 논리를

관리자 | 2011.11.01 10:16 | 조회 1845

[생명의 문화] 생명을 위협하는 우리 시대의 우생학적 논리를

 

 

박정우 신부(가톨릭대 신학대학 교수)

 


2010년 7월 고려대병원에서 소아 환자의 어머니 1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산모 10명 중 6명은 '선천적 심장병이 있다면 낙태하겠다'고 응답했다는 결과가 보도됐다. 가슴을 여는 수술 없이 간단한 치료만으로도 완치될 수 있음에도 장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불법임에도 불구하고 낙태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산전검사의 일종인 양수검사 등을 통해 태아의 유전체 이상을 조사해 다운증후군 등과 같은 심각한 기형이 있다고 진단되면 낙태를 선택하는 것은 상식처럼 돼있다. 태아 진단은 오진의 가능성도 많을 뿐 아니라 검사 자체만으로 아무런 이상이 없는 태아의 생명도 위협할 수 있고 선천적 심장병처럼 출산 후 치료 가능한 태아마저도 희생되는 경우가 많다.

 교회는 산전 진단이 태아의 질병을 초기에 치료할 목적이라면 윤리적으로 정당하지만 이상이 있을 경우 낙태하기 위한 수단으로 행해지는 것을 엄격히 단죄한다. 교회는 산전 진단을 통한 낙태는 적격자만이 살아남을 자격이 있다는 "우생학적 의도"가 바탕에 깔려있고, 인간 생명의 가치를 신체적으로 '정상'인 범위 안에서만 판단하겠다는 것이기에 "유아 살해와 안락사도 정당화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것"이라고 지적한다.(「생명의 복음」 63항)

 또 해마다 노인 학대 상담 건수와 노인 요양소에 버려지는 노인들 숫자도 늘고 있다. 경제적 이유로 자녀들이 늙고 병든 부모를 버리는 것이다. 심지어 존속 살인도 그 수가 증가하는 추세다. 우리나라 노인 자살률은 전체 인구 자살률의 2배가 넘고 다른 나라에 비해서도 매우 높은 수준이다. 경제적 어려움과 질병, 외로움과 우울증에 시달리는 많은 노인들이 삶의 희망을 느끼지 못하거나 자식들에 대한 짐이 되기 싫어 자살을 선택하고 있다. 이런 노인들을 위해 우리 사회의 복지 대책은 거론하기조차 부끄러운 현실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 만연한 우생학적 논리와 물질주의 가치관을 고려할 때 앞으로 빠른 속도로 고령사회를 향해 가는 우리나라가 노인들을 '건강 보험'을 축내는 사회의 '짐'으로 여기면서 적절한 복지대책보다는 소위 '존엄사' 합법화를 먼저 논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이런 현실에도 노인들을 무가치한 존재로 여기는 '우생 사상'이 깔려 있다.

 인간 계층을 우열로 나누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의미하는 우생 사상은 사실 고대 그리스부터 존재했을 만큼 뿌리 깊은 것이다. 이런 우생 사상의 흐름은 19세기 후반 영국에서 다윈과 스펜서의 '최적자생존' 이론에 영향을 받은 '우생학(Eugenics)'이라는 학문의 정립으로 이어졌다.

 20세기 초반 유럽과 미국에 큰 영향을 미쳤던 우생학은 사회 부적격자 출생 및 유입을 억제하고 우월한 계층의 출산 장려에 이용됐다. 특히 독일에서는 우생학적 논리를 적극 수용한 독일 나치에 의해 1940년부터 5년 동안 수백만 명 사람들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해됐는데 그들 중에는 유대인뿐 아니라 질병환자, 장애인, 경제적 빈곤자 등도 포함됐다. 이들은 열등하므로 사회의 진보를 위해 도태돼야 한다는 이유였다.

 이런 나치의 가증할 만한 우생학적 논리가 사실 우리 사회에서도 통용되고 있는 것이다. 산전 진단을 통한 장애아 낙태, 사회 경제적 이유로 행하는 낙태, 늙고 병든 부모를 유기하는 행위 등이 열등한 인종 및 사회의 '부적격자'는 제거돼야 한다며 행해졌던 나치의 학살과 어떤 근본적 차이가 있을까.

 '생존경쟁'에서 이겨낸 '적격자'만이 살아남는 것이 자연 법칙이라며 사회적 약자의 생존권을 무시하는 우생학적 논리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 만연해 있는 듯하다. 많은 이들이 부지불식중에 태아, 배아는 이미 태어난 사람보다 열등하고, 장애인은 비장애인에 비해 열등하며, 노인과 병자들은 젊고 건강한 사람보다 열등하다고 여기면서 그들이 부담만 지울 뿐 존재할 가치가 없다고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물론 사회적 약자의 부양을 한 개인의 힘으로 감당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그렇기에 생존경쟁으로 희생되는 약자들을 보호하고 생명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도록 사회적 안전망과 복지 제도를 강화하는 국가의 책임이 더욱 중요하다.

 우생 사상은 모든 인간은 하느님 모상을 닮아 존엄하다는 그리스도교 사상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어느 누구도 우열의 논리로 다른 사람의 생명 가치를 판단할 자격이 없다. 더구나 그 판단을 기준으로 그 생명을 파괴하는 일은 더욱 큰 범죄이며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대한 모독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우리 시대의 가장 작은 이들이 과연 누구인가.

 

 

[평화신문] [1119호][2011.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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