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칼럼

[생명의 문화] 줄기세포 연구와 생명 : (1) 배아는 이미 생명이다

관리자 | 2012.05.29 10:49 | 조회 4318

[생명의 문화] 줄기세포 연구와 생명 : (1) 배아는 이미 생명이다

우재명 신부(서강대 신학대학원 교수,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위원)

배아는 성인의 몸과 마찬가지로 이미 생명체이다. 따라서 배아의 생명권은 존중받아야 하고, 점진적 발생 과정을 통해 계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보호받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배아의 생명권에 대한 의식은 너무 미약하다. 국민 생명을 보호하고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제정된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조차도 배아를 생명 보호의 대상으로 존중하기 보다는 단순히 '세포군'으로 규정하고 있다.

 여성의 난관 끝부분에서 정자와 난자가 만나게 되면 수 시간 내에 분열해 수정란을 형성하게 된다. 그 이후, 생명의 발생과정에 따라 수정 후 8주까지는 배아(embryo)로, 8주 이후에는 태아(fetus)로 성장하게 된다.

 최근 배아연구에 대한 윤리적 문제가 제기되면서, 배아의 발생학적 단계를 다시 착상 전ㆍ후로 세분하기도 한다. 수정란이 자궁 내막에서 자리를 잡고 착상을 완결하는 2주까지를 전배아(pre-embryo)라고 하고, 그 이후 8주까지를 배아라고 부른다.

 하지만 어느 단계이든 배아는 남자의 반배수체 염색체와 여자의 반배수체 염색체가 융합해 '아버지의 것도 아니요, 어머니의 것도 아닌' 독립적 유전자를 갖고 수정된 개체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배아는 단순한 세포군이 아니다. 발생과 분화과정을 통해 인체의 모든 조직과 기관을 형성하게 될 인간생명체인 것이다.

 필자는 수년 전 서울 혜화동에서 개최된 '인체신비전'을 기억한다. 그 때 말로만 듣던 배아, 태아를 볼 수 있었다. 크기가 너무 작아 확대경을 통해 겨우 볼 수 있었다.

 수정란은 직경이 0.1∼0.15mm 정도라고 하니 얼마나 작겠는가. 수정 후 8주가 지나도 크기는 약 4mm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 작은 존재 안에서 이미 생명이 시작됐다는 것은 실로 신비가 아닐 수 없다.

 인간 각자는 어느 누구와도 동일하지 않은 독특하고 유일한(unique) 존재다. 일란성쌍둥이도 성장과정에서 계속적 돌연변이 발생에 의해 조금씩 달라지게 된다고 한다.

 인간의 이러한 유일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바로 유전자다.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과 기질은 세포의 핵 안에 들어있는 유전자 발현에 의해 이뤄진다.

 그런데 이 작은 배아 안에는 아기로 탄생하기 위한 모든 유전자가 이미 다 갖춰져 있다. 유일한 존재인 '나'로서 모습을 갖추게 될 모든 유전정보가 외부적으로 추가되는 것 없이 배아의 핵 안에 모든 것이 들어있는 것이다. 이 유전정보에 의해 내부적으로는 여러 장기들이 점진적으로 형성되고, 외형적으로는 눈, 코, 입, 얼굴, 체형 등의 구체적이며 독특한 자기만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벨기에 보건부 산하 인구 및 가족 연구센터에서 발행한 보고서에 의하면, 인간의 발달 단계는 어느 순간에 경계를 그을 수 없는 연속적이고 점진적 과정에 있다. 이러한 점진적 발생과정에서 '인간이 아닌 생명'과 '인간인 생명' 사이의 경계를 그을 수 있는 객관적 기준은 없다.

 이는 점진적 생명의 발생 과정 속에서 '생명을 보호받아야 하는 순간'과 '생명을 보호받을 수 없는 순간'을 구분할 수 있는 객관적 기준은 존재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즉, 인간의 발달 단계에서 각각의 단계는 다음 단계를 위한 필연적 상황이며, 이러한 연속적이며 점진적 발생 과정에서 어느 단계가 다른 단계보다 더 중요하고 더 결정적이고 더 근본적이라고 할 만한 순간은 없다는 것이다.

 교황청 신앙교리성이 발표한 인공유산반대선언문(1974)도 "생명체가 자라나서 충분히 결정된 독자적 특성을 지닌 사람이 될 프로그램이 이미 잉태되는 순간부터 이뤄진다는 것"을 이미 현대 유전학이 증명해 주고 있다고 언급하면서 "인간이 될 자는 이미 인간"이라고 분명히 선언하고 있다.

 이는 잠재성 논증으로 설명할 수 있다. 잠재성 논증이란 "합리성을 잠재적으로 소유한 모든 존재는 합리성을 실재로 소유한 존재와 동등한 도덕적 지위를 갖는다"는 것을 말한다.

 이 논증을 배아의 경우에 적용하면, 배아는 비록 외형적으로는 아직 성인의 모습을 지니고 있지 않지만 그 모습이나 기능을 발현할 수 있는 모든 유전자를 소유하고 있기에 성인이 될 잠재성을 이미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배아는 이미 생명이며, 성인의 생명과 마찬가지로 신성하고 존엄한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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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신문  2011.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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