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은 에메레타 (해방촌 본당)
양수가 터지고 수술대에 올라가 힘껏 힘을 주고 진통이 시작된 지 3~4시간 후 오후 3시 28분, 눈부시고 새하얀 아기가 태어났다. 정말로 신기했다. 저런 예쁜 아기가 태어나다니, 그것도 다른 사람이 아닌 내 뱃속에서…. '공주님입니다'라는 소리와 함께 나는 각각 10개씩이 있는지 아기의 손가락과 발가락을 세어보았다. 다행히도 우리 공주님은 예쁘고 건강하게 세상에 태어나 주었다. 키 30cm 몸무게 3.2kg의 공주님으로 태어났다. 아기를 보는 순간 난 너무나 이 세상이 아름다워 보였다.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듯한 느낌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선물을 받은 것만 같아서 정말 기뻤다. 응애응애 하고 우는 아기의 울음소리는 '엄마 나 세상에 나왔어요. 만나서 반가워요'하고 나에게 말을 하는 듯 했다. 그 울음소리가 이 세상에서 어떤 소리보다 아름답게 들렸다.
병실에 누워있는데 아기가 배고파 운다고 빨리 모유수유실로 내려오라는 호출을 받고 나는 그리로 향하였다. 내 가슴으로 파고드는 그 조그마한 아기가 정말 내 아기인지 계속 아기만을 응시했다. 이 조그마한 아기가 내가 엄마인지 아는 것이 신기했다. 어떻게 모유 먹는걸 알고 있을까? 계속 나는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였다.
나는 이 모든 것이 마냥 신기했다. 한 여자의 몸에서 새 생명이 태어난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하게 되었을 때 사람의 몸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는 것을, 한편으로는 험한 세상 속에서 아기를 건강하고 튼튼하게 아무 탈 없이 키워나가야만 한다는 불안감과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다. 그리고 10명, 12명씩 낳아서 키우셨던 옛날 엄마들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가끔 텔레비전을 통하여 싱글 맘이나 부모님의 반대로 인해 어린 엄마와 아빠, 아기 이렇게 셋만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면 가족들의 힘이 얼마나 큰지 새삼스레 느껴진다. 그리고 임신을 하였는데도 잘 모르고 있다가 배가 불러서 공중화장실 같은 곳에서 고통 속에서 혼자 아기를 낳고 그 아기를 버리는 어린 미혼모들의 이야기를 보면 정말로 가슴이 아프다. 그 속에서 아기의 아름다움, 새 생명의 신비로움을 보지 못하고 자신의 무책임한 행동으로 인해 한 생명이 죽고 버려지는 일들….
가끔 싱글 맘들을 곱지 않게 보는 시선들을 느낀다. 하루 빨리 우리나라에서도 싱글 맘들이 자리잡고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아빠나 엄마가 없다고 아이들에게 상처주는 그런 일들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주일미사를 가면 난 우리 아기와 유아방에서 미사를 함께 드린다. 그럴 때마다 다른 친구들은 엄마랑 아빠 그리고 아기가 이렇게 셋이서 같이 오는데, 아기는 나와 단 둘이 오는 것을 알고 있는지 다른 친구의 아빠를 유심히 쳐다본다. 그럴 땐 우리 아기도 아빠가 없는 것을 아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면서 눈물이 난다.
그리고 나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기에게 상처를 준 건 아닐까. 우리 아기가 나중에 자라서 유치원을 가고 학교에 입학하고 그러면 가정환경 조사서를 써오라고 할텐데, 나는 왜 아빠가 없어? 라고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을 해줘야 하나…. 나는 그 생각에 잠시 빠져있었다. 그러고나서 일주일 정도 후에 이렇게 대답을 해줘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엄마는 아빠랑 우리 아기 둘 중에 한 사람만 선택할 수 있었어. 그래서 엄마는 아빠가 아닌 너를 선택했단다. 엄마는 이 세상에서 너를 가장 사랑하니까 너를 잃고 싶지 않아서 아빠 말고 너를 선택해서 그래…. 그러면 아기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나의 마음을 이해해줄까? 나의 이야기를 이해해줄까? 나를 원망하지는 않을까? 난 다만 아기가 아빠가 없다고 놀림을 받거나 상처받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비록 싱글 맘이지만 나에겐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예쁜 공주님이 있어 힘든 일이 있어도 세상을 살아간다. 지치거나 힘들어도 집에서 나를 반갑게 맞아주는 아름다운 해맑은 미소의 우리 아기를 보면 난 힘을 얻는다.
지금 나와 같은 일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나의 이야기가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들에게 무엇보다 가족들의 큰 응원과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들의 가족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생명을 잉태하고 낳을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생명을 잉태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으니까 말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몸매는 키 크고 마른 모델의 몸이 아니라 새 생명을 가진 남산만한 엄마의 몸매라는 생각을 한다. 아기가 태어나기 전까지 이런저런 일들이 많았다. 설상가상으로 내가 임신을 했을 때 집안에 안 좋은 일이 생겨서 집안 분위기가 어두웠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모든 일들이 술술 풀렸다. 부모님은 우리 아기가 복덩어리라고, 안 낳았으면 큰일날 뻔했다는 말씀을 하신다. 지금은 우리 집안의 꽃이자 복덩어리가 된 우리 예쁜 아가, 정말 그 누구보다 곁에서 나를 응원해주고 아껴준 나의 가족, 엄마 아빠 내 동생 그리고 우리 예쁜 공주님, 주위의 모든 어르신 언니들에게 너무나 고맙고 감사하다. 나를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내가 아기에게 가르쳐주는 것보다 내가 아기에게 배우는 것이 참 많다. 생명의 소중함과 행복, 그리고 사랑…. 나에게 많은 것을 주고 많은 것을 가르쳐주는 우리 아기에게 고맙다. 내가 힘들고 절망감에 빠져있을 때 나에게 힘이 되어준 우리 아기, 아기를 통해서 나는 새 생명을 갖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아기를 낳기 전까지 나에게 힘이 되었던 말이 있다. "엄마가 되는 것은 의무가 아니라 축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