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생명수호 체험수기 공모전 우수상 : 또 다른 생명
평화신문 [1071호][2010.06.06]
또 다른 생명(김지혜 율리안나, 서울 석관동본당)
햇빛이 병원 바닥에 반사돼 더욱 눈이 부시던 그날. 기다리는 사람들의 표정마다 설렘이 가득하다.
열 달의 기다림 그리고 새로운 만남. 긴장감이 맴도는 복도를 지나는 나의 발걸음도 왠지 더 조심스러워진다. 병실 안에도 겨울답지 않은 따뜻한 햇볕이 가득하다. 6인실 병실의 한 켠, 조용히 커튼을 드리운 작은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늘 그랬듯이, 내 손에 있는 종이의 이름을 보지 않아도 나는 알 것 같다. 내가 만나야 할 사람, 바로 태어날 아기를 기다리며 누워 있는 산모들 사이에서 소리 없는 슬픔을 삼키고 있는 '어린 엄마'이다.
나는, 힘들게 아기를 보내는 생모들을 만나는 사회복지사이다. 이미 내가 도착하기 전에 많은 눈물을 쏟아낸 그 어린 엄마는 지난 열 달을 이렇게 말한다. "세상의 곱지 않은 시선과 부모님 걱정을 이겨내는 시간이었다"고. 사랑하던, 믿었던 사람이 떠나고 경제적 어려움이 밀려오며 수백 번, 수천 번 고민을 거듭했던 어린 엄마는 오늘 또 출산 이후의 시간들을 다시금 고민하고 있다. 부모로서 아직 준비되지 않은 자신의 현재와 알 수 없는 미래, 더불어 싱글맘으로 아기와 함께 받을 사회의 차가운 시선을 이겨낼 자신이 없다고 털어놓는다.
슬픔으로 퉁퉁 부은 눈에 아직도 눈물을 글썽이며 결국 입양을 선택한 어린 엄마는 긴 시간의 상담 마지막까지도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그녀는 어렵게 결정한 자신의 선택이 과연 옳은 것인지 끝없이 자신에게 반문하며 나에게 아기의 안위와 안전한 미래를 몇 번이고 확인한다. 생명 존엄의 가치가 흔들리고 있는 이 세상에서 뱃속 생명을 소중히 지켜온 어린 엄마의 마음을 알기에 아기를 안고 입양원으로 돌아오는 마음이 더욱 무겁다. 세상의 빛을 본 지 이제 3일 된 아기, 생애 처음 긴 여행을 시작하는 이 아기는 슬픔으로 일렁이는 엄마 마음을 알고 있는 듯하다. 내 품 안에 있는 작은 생명은, 생모와의 이별을 뒤로한 여행 내내 까맣게 반짝이는 눈을 감지 않는다.
아기방에 도착해 삐약삐약 울고 있는 아기들 사이에 안고 온 아기를 내려놓으니 모두들 옹기종기 모여 새로 온 아기를 맞이한다. 이 생명이 예쁘고 소중하다는 것은 알지만 어떠한 과정을 거쳐 온 '또다른 생명'인지 생각하고 있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 아기는 사랑과 배반의 터널을 통과했으며, 삶과 죽음의 기로에 놓였으며, 이제 또 수많은 시선과 편견을 이겨내고 있는 생명인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도착한 그 아기는 무엇보다 생명 그 자체만으로도 환영받고 축복받아야 할 존재이며 기쁨의 상징이 될 수 있다.
생명(生命). 살아있는 모든 것을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리고 당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인간의 사랑으로 잉태된 소중한 생명이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묘한 기쁨과 흥분감을 느끼게 한다.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깨닫지 못한 신비로움인 것이다. 그리고 그 아기 안에 잠재된 무한한 능력과 미래를 생각해본다면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엄청난 생명임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그렇기에 오늘 나는 아기가 무럭무럭 자라 건강한 사회의 일원으로 자리매김하길 진심으로 기도하게 되는 것이다.
입양원에 새로운 가족이 된 아기는 시간이 흐르면서 행복을 만든다. 새근새근 잠이 들며 배냇 미소를 짓던 아기는 어느새 옹알이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돌보는 손길을 벗어나 스스로 젖병을 잡고 우유를 먹었고, 목을 가누더니 어느 순간 혼자 일어나 앉는 기특함을 보이며 주변을 환한 빛으로 물들였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아기는 성장하고 있었고, 스스로 빛을 발하고 있었으며 그 성장이 우리를 더욱 더 환호하게 했다. 어느새 아기가 떠나온 슬픔의 터널은 아직 오래 지나지 않았지만 아련하게 희미해져간다. 그리고 이제는 아기가 주는 기쁨을 통해 생명의 축복을 느낀다.
아기가 어엿한 하나의 생명으로 자리매김할 즈음, 이제는 아기의 얼굴을 마주해도 눈물을 흘리던 어린 엄마의 얼굴이 겹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 여인의 마음이 뜨거웠음을, 그리고 애틋했음을 누구보다 나는 기억하려고 한다. 그렇게 수많은 고민 속에 어렵게 선택된 생명임을, 어렵게 지켜진 생명임을 꼭 기억해둬야 한다.
아기를 지켜낸 마음과 고민을 알고 있다면 그 아기의 성별은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아직은 인간 생명을 나름의 기준과 잣대로 판단하려는 사람들이, 그리고 우리나라 입양문화가 조금은 아쉽다. 이런 안타까운 마음을 뒤로하고 오늘 또 생명을 기다려 온 새로운 부부를 만난다. 오랜 기다림 끝에 생명을 품에 안은 부부는, 나와는 또 다른 생명의 의미를 느끼는 듯 보인다. 그리고 그 생명을 향한 무거운 책임과 한없는 사랑을 다짐하며 하느님 앞에서 진심으로 생명을 맞이한다.
막 자라는 이 생명은 이제 누군가가 지켜줘야 할 생명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안아줄 한 인간으로 성장할 것이다. 나는 그 작은 생명과의 첫 만남과 더불어 입양을 통한 이별을 경험한다. 그것은 슬픔으로 태어난 생명이 기쁨으로 다시금 태어나는 순간이 된다. 헤어짐의 순간에 어린 엄마가 흘렸던 슬픈 눈물이 아기를 맞이하는 부부가 흘리는 기쁨의 눈물로 변화하는 순간. 나는 그 순간에, 이러한 기쁨을 함께하지 못하고 생명을 지켰음에도 늘 죄스러운 마음으로 살아갈 그 어린 엄마를 위해 잠시 기도한다.
존엄성과 존귀함을 강조하는 인간의 '생명'이 세상 모든 이들에게 모두 같은 의미라면 얼마나 좋을까. 생명으로 태어나 자신의 생명을 지키고 살아가며 또 다른 생명을 낳아 기르게 되는 것이 바로 인간이다. 또한 생명을 지키겠다고 아등바등하는 이에게 비수와 같은 말을 던지며 그 생명의 숨을 조르는 이도 인간이다. 생명의 의미는 결국 우리 인간 스스로가 만들고 채워가야 할 과제인 것이다.
생명을 잉태한 어린 엄마가 경험하는 생명의 의미는 어떠할까. 임신한 배를 이끌고 어린 엄마가 거리를 활보하기엔 아직 사회의 시선이 곱지 않다. 싱글맘이 아기와 생활하며 여느 가정처럼 일상적인 것을 누리겠다고 주장해도 그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나이의 많고 적음이나 혼인 유무를 떠나, 자신이 품은 생명을 걱정 없이 보호하고 낳아 기를 수 있는 세상이 되기엔 아직 우리 사회의 편견은 뿌리 깊다. 그런 따가운 시선들에 치여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에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져가는 생명들이 얼마나 많은지….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용기와 망설임 사이에서 선택되지 못한 또 다른 생명이 빛을 잃고 있을 것이다.
성북동의 입양원에는 수많은 생명들이 살아 숨쉬고 있다. 엄청난 경쟁을 뚫고 태어나 옹기종기 생활하고 있는 아기 생명들. 그 아기들은 낙태의 위험을 이겨냈으며 생모의 수많은 고민을 지나온 '운 좋은' 아기들이다. 그리고 입양원 앞마당에는 개가 낳은 꼬물꼬물 강아지들도, 늦은 오후 밥을 먹으러 나오는 나른한 고양이 가족도, 가끔 먹이를 찾아 들리는 산새와 청설모들도 있다. 많은 이들의 눈물과 슬픔을 마주하며 일하고 있는 나에게 이들은, 항상 나의 마음을 훈훈하게 해주는 많은 생명들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지금 품고 있는 생명의 소중함은 나와 마주한 많은 생모들이 만들어준 소중한 가치관이며, 지금도 어린 엄마들을 통해 매일매일 새롭게 느끼고 있다.
나의 일은 생명을 구출해내는 긴박한 선상 위에 놓여 있지는 않다. 그러나 그 겨울 어린 엄마와의 만남 이후 나는 늘 기억하려 한다. 내가 마주하는 모든 '또 다른 생명'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생명은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만이 지켜내는 것이 아니다. 생명은 누구나 지켜낼 수 있어야 하며, 그것이 당연시되는 사회가 돼야 한다. 생명을 지킬 수 있는 힘이 다른 누군가가 아닌, 내 이웃 바로 나 자신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