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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주교님 메세지] 코로나19와 생명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성찰

관리자 | 2020.05.25 13:43 | 조회 4333

코로나19와 생명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성찰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지난 3개월간 우리는 어려운 일을 겪었습니다. 조금씩 상황이 나아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안심할 수 없는 지금, 먼저 감염병 예방과 환자들의 치료를 위해 온갖 노고를 아끼지 않으시는 의료인 여러분께, 특히 어려움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기꺼이 이웃이 되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불편과 어려움을 감내하며 감염병 예방에 참여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진심어린 감사와 격려의 말씀을 드립니다.

특별히 사순시기와 부활 대축일에 미사에 참례할 수 없는 가운데에도 각 가정에서 구원의 신비를 묵상하고, 신앙의 삶을 지속해오신 교우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번 코로나19 감염병 대유행을 통해 우리가 함께 성찰하고자 하는 바를 몇 가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번 감염병으로 인해 세상을 떠나신 분들, 투병중이신 분들을 기억합니다

많은 분들이 새롭게 등장한 이번 감염병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더욱이 감염 예방의 필요성 때문에 그분들의 임종과 배웅의 자리에 친지가 모일 수도 없었습니다. 그분들을 기억하며 하느님의 자비로운 손길을 기도합니다. 그리고 이번 감염병으로 사랑하는 가족이나 지인을 잃고 슬픔에 잠겨 계신 모든 분들께 마음 깊이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또한 여전히 감염병을 앓고 계시는 분들, 특히 상태가 위중하신 분들과 죽음의 문턱에서 병마와 싸우고 계신 분들을 기억하며, 그분들이 이 병환을 잘 견디고 이겨내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삶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한 사람의 감염이 수많은 사람들의 건강과 활동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습니다. 한 사람의 건강이 다른 사람들의 건강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의 공동체라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이 공동체 안에서 우리의 삶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나의 안녕이 타인의 안녕과 무관하지 않으며, 타인의 안녕이 나의 안녕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나의 삶이 타인의 삶과 무관하지 않으며, 나의 생명이 타인의 생명과 결코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번 코로나 사태는 타인에 대한 배려, 공동선에 대한 책임에서 누구도 면제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생명에 대한 책임이 자유를 빛나게 합니다.

최근에 우리 사회는 이른바 자기결정권의 이름으로 개인의 무제한적인 자유를 가장 소중한 가치인 것처럼 인식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과 이웃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우리의 자유가 빛나게 된다는 것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자신과 타인을 위해 기꺼이 사회적 거리두기의 불편을 받아들인 시민들, 몇 장의 마스크라도 보탬이 되기를 바라며 경찰서에 기증했던 장애인들과 어린이들, 나아가 위험을 무릅쓰고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뛰어든 의료인들 안에서 우리의 자유가 빛을 발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반대로 자신과 이웃의 책임을 소홀히 하는 자유는 더 큰 고통과 불편을 초래한다는 것도 보았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자유는 책임을 필요로 합니다. 이 책임은 단순히 자신의 잘못된 행동의 결과를 짊어지는 사후적 책임만이 아니라, 행동하기 전부터 자신과 이웃의 선익을 생각하는 예견적인 책임을 말합니다. 이러한 책임 가운데 첫째는 바로 생명에 대한 책임입니다. 자신과 이웃의 생명에 대한 책임은 자유를 의미 있게 해주고, 자유를 빛나게 해주는 근본 바탕입니다.

 

생명 존중의 문화를 회복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의 이름으로 생명 존중에 대한 의식이 약해졌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제 우리는 생명에 대한 책임을 회복해야 합니다. 개인의 자유, 경제적 이득, 그 밖의 모든 가치는 생명 존중보다 우선할 수 없습니다. 생명을 경시하는 죽음의 문화는 우리사회를 각박하게 만들 뿐입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사랑을 일깨우며, 우리 사회가 아직 살만하다고 느끼게 해주는 것은 생명 존중을 위한 책임 있는 행동, 약한 처지의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는 모습입니다. 그러한 생명의 문화, 사랑의 문화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사회적 약자에게 보다 관심을 기울입시다

폐쇄병동에 입원해 있던 환자들, 비좁은 공간에 모여 일하던 콜센터 노동자들이 집단감염에 노출되었습니다. 사회적으로 취약한 분들이 감염에도 취약하였습니다. 평소에는 가려져 있던 우리 사회의 약한 부분이 이렇게 드러났습니다. 이번 사태는 사회적 약자에 대하여 보다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사회적 불평등이 건강의 불평등을 낳는 현실을 직시하고, 보다 많은 관심이 필요한 곳에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지역의 생산을 촉진합시다

이번 감염병으로 각 나라의 상품들이 손쉽게 국경을 넘나드는 세계화의 취약함이 드러났습니다. 나라간의 교역이 어려워질 때, 수입에 의존하던 부분은 재화부족에 시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민의 기본생활에 필수적인 것을 수입에 의존할수록, 교역의 장애가 기본생활의 위기를 초래할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식량입니다. 식량의 위기는 사회와 국가의 위기를 낳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역의 생산이 촉진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 농촌이 살아야 합니다. 언제든 닥칠 수 있는 위기상황을 견뎌낼 힘을 기르기 위해, 우리 농촌 살리기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일상에서 생태계를 생각하는 삶을 실천합시다

마지막으로 이번 코로나 사태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의 집’, 생태계에 대하여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번 감염병의 유행은 생태계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더욱 분명한 실천으로 드러나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소비주의 생활방식이 환경파괴와 생태계 변형을 가져왔다면, 생활방식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보다 분명한 의식을 가지고, “일상의 작은 몸짓들을 통해 환경의 훼손을 막고 절제의 문화, “돌봄의 문화(프란치스코, 찬미받으소서, 231)가 삶 안에 자리잡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이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처럼, 나와 내 집단의 이해관계만을 생각하지 말고, 지금의 시련을 우리 모두의 내일을 준비하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함께 하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는 없을 것입니다(프란치스코, 부활 제2주일 강론, 2020419일 참조).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성모님의 전구를 청하며, 진정한 생명의 문화를 건설하기 위하여 다함께 앞으로 나아갑시다.


천주의 성모님, 당신의 보호에 저희를 맡기오니, 어려울 때 저희의 간절한 기도를 외면하지 마시고, 항상 모든 위험에서 저희를 구하소서. 영화롭고 복되신 동정녀시여.

 


2020525

천주교 서울대교구

생명윤리자문위원회 위원장 주교 구요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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